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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굿피플] '연꽃' 스님 선암 2003-12-04 20:37

[굿피플] '연꽃' 스님 선암  
[사회] 2002년 01월 31일 (목) 13:53

  


"어이, 학생! 평소에도 그렇게 능청맞게 걸어. 카메라 의식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가봐."

선암스님이 목도리를 한바퀴 휙 돌려 끝자락을 동여매고는 카메라에 한쪽 눈을 들이민다. 셔터를 연방 눌러댄다. 카메라에서는 촬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순간동작과 정지된 모습이 거의 동시에 잡힌다. 여대생들과 희희낙락하며 담아낸 이화여대 교정은 일본 교육전문 월간지 <한국의 대학문화> 2월호에 '한국 도심 속의 대학 미(美)'라는 화보로 실린다.


일본의 문화전문 월간지 <한국의 문화>는 2001년 1월부터 매달 그의 사진을 내보냈다. 그 사진들은 일본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연스레 일본인 골수팬이 생겼다. 지난 한해 동안 선암스님을 만나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너온 일본인은 500여명.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생생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료 귀동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의 고유성과 특이성이 담긴 그의 사진은 국내 종교전문지 <주간불교>에 매주 화보로 연재돼 이목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우리 문화의 진정성을 찾고 싶었어요. 요즘은 시골에 가도 교배문화만 눈에 띄잖아요. 불교가 비록 외래문화이지만 선조들은 불교를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로 끌어올렸어요."


선암스님이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 당시 그는 공군본부 정훈실에서 사진병과 함께 근무했다. 사진병과 가까워지면서 사진술을 배우고 익혔다. 동자승 출신이던 그는 군종병으로 3년간 병역을 마친 뒤 다시 산문에 들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사진 찍을 일이 생겼어요. '군에서 전문가들에게 사진을 배웠다'고 당당하게 나섰죠."


주지스님이 카메라를 마련해 줬다. 자나깨나 카메라를 주물렀다. 잘 때도 머리맡에 뒀다. 하도 가지고 놀아 손때가 잔뜩 밴 인형처럼 카메라는 손기름에 반들반들 길이 났다. 사진술 이론에도 빠졌다. 관련서적은 주로 일본에서 구했다. 목탁 대신 카메라를 들어서인지, 독학의 어려움은 언제나 터득의 환희로 끝났다.


"상황이 어른들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밥만 축내는 난봉꾼'이라는 호통이 떨어져 잠시 염불에 몰두하는 척했지요."


그는 목탁 가운데 나 있는 구멍으로 부처를 바라보며 화두에 매달려 봤지만 마음의 가닥을 잡지 못했다. 마음이 염불보다 잿밥에 가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고뇌만 깊어갔다. 1979년 어느날, 한 신도가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사진 공모전을 알려주며 출품을 적극 권했다. 별다른 준비없이 출품했는데, 입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 뒤 카메라로 부처를 찾아가는 길이 열렸다. 연꽃 촬영에 들러붙었다. 연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국내 산골은 물론 일본과 필리핀, 인도 등 외국 6개국을 떠돌았다. 어렵사리 촬영한 연꽃사진은 88년 국전 입선작으로 뽑혔다. 90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주최한 '제50회 국제 공모전'에서도 입상했다. 출품작을 내놓았던 한국작가 300여명 중 단 2명이 입선했을 정도로 아사히신문 사진전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다.


그는 주변 권유에 못이겨 그동안 연꽃전시회만 9차례 가졌다. 사진집 <연꽃사진 모음2>는 사라져가는 연밭을 원형 그대로 담고 있어 사료로서도 높이 인정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그를 '연꽃스님'이라고 부른다. 태국·독일 등 해외에서 연꽃 초대전을 치르며 얻은 애칭이다.


"30년 동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불교의식 '영산제'를 찍어 왔는데, 이 자료들을 모아 영어·일어·중국어판으로 책을 내기로 했어요. 아마 5월쯤 나올 것입니다. 이 모든 게 다 보시를 행하는 것 아닐까요."

이도형 기자 dohlee21@h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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